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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매트릭스 - 시뮬라크르와 시뮬레이션 | 현실의 현실 혹은 재현의 재현

근성미 2023. 3. 25. 08:13

영화 매트릭스(1999)

 

영화 매트릭스 그리고

Jean Baudrillard 쟝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 & 시뮬라시옹

 

     워낙 유명한 영화여서 봐야지 봐야지 미루다 드디어 보게됐다. 영화 시작 부분에 어떤 책이 나오는데 바로 프랑스의 사회학자 Jean Baudrillard (1929-2007)의 책 Simulacra and Simulation (1981)이였다. 작년 여름에 읽었던 책이다. 그의 이론으로 한 학기 내내 과제를 한 적도 있다. 이 장면을 보자마자 오 매트릭스가 보드리야르의 이론에 영향을 받아 만든거구나! 했다. 비하인드 스토리로, 실제 매트릭스에 출연한 배우들은 이 책을 필수로 읽었어야 한다고 한다.

 

 

The Matrix (1999)

 


쟝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 & 시뮬라시옹이란?


    보드리야르는 우리의 사회는 실재(reality)에 기반해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대신한 많은 복제품들(simulacra)에 의해 돌아가는 것이라 했다.

 

    어디서부터 시작한지는 모르지만 심리학에 Pumpkin Spice Latte Theory라는게 있다. 사실은 4계절 내내 먹을 수 있는 단호박이지만, 사람들이 Pumpkin Spice Latte 광고를 보고 가을이 왔다고 생각하게 만듬으로써 마케팅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특히 북미사람들에게 호박은 가을을 떠올리게 하고 따뜻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효과가 있는데, 그 이유는 가을에 가족들과 모여 호박파이를 디저트로 먹는다던지, 할로윈이라던지(어린시절의 추억)하는 기억들이 있기 때문이다. 스타벅스의 단호박 라떼 선전이 이런 추억의 느낌을 고객들에게 상기시킴으로써 심리적으로 기분이 좋아지게 한다. 이것은 가을마다 자연스럽게 단호박 라떼의 판매량을 올린다. 여기서 아이러니한 것은 단호박 라떼에는 단호박이 전혀 들어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냥 단호박 냄새가 나는 단호박 맛 시럽을 넣은 음료인 것.

 

    이것은 순전히 북미의 문화를 바탕으로 한 마케팅 효과이며, 한국사람들에겐 그냥 스타벅스 가을 신제품 '단호박 라떼' 정도인 것 같다. 여기서 단호박과 비슷한 느낌을 예로 들자면, 추석의 송편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맞는 것 같다. (느낌만 그렇고 송편으로는 이론설명이 불가능하다.)

 

    보통 이 단호박 라떼 이론의 배경을 빌려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와 시뮬레이션 이론의 예시로 사용한다.

 

스타벅스에서는 매 가을마다 단호박 라떼 광고를 한다.
'단호박 라떼'는 단호박 맛 및 단호박 파이 맛이 나는 스타벅스의 가을 인기 상품이다.
사람들은 단호박에 대한 추억을 상기하며, 스타벅스에 줄을 서기 시작한다.

 

  • 우리가 보는 '단호박 사진'부터가 '단호박'(실재)의 모조품이다.
  • 우리는 '단호박 라떼'에는 '단호박'(실재)을 이용한 '단호박 파이'(실재의 변형)에서 쓰이는 재료가 들어가서 단호박 맛이 나는 가을에 딱 어울리는 라떼라고 생각한다.
  • '단호박'으로 만든 '단호박 파이 맛'을 겨냥한 '단호박 라떼'에는 사실 '단호박'이 들어있지도 않다. 그러므로 단호박 파이와도 연관성이 없다.
    = 스타벅스 '단호박 라떼'에는 '단호박'(실재)이 없다.
    여기서부터 모조품(simulacrum)인 단호박 라떼는 있지도 않은 실재의 단호박(reality) 자체를 대체하기 시작하고 단호박이 진짜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경계가 흐려진다.
  • 스타벅스의 단호박 파이 맛이 나는 '단호박 라떼'는 온전한 모조품 그 자체로서 힘을 가지게 된다.
  • '단호박 파이 맛'(모조품의 모조품) 그 자체는 더 이상 '단호박'(실재)과 연관성이 없다. 하지만 그 자체만으로 가치를 가지게 됐고 사람들은 그 맛을 위해 가을만 되면 스타벅스에 간다. 혹은 단호박 파이맛 시럽을 사기 시작한다.

 

    수업 때 들은 것들과 여러가지 찾아보고 공부하면서 내가 이해한 대로 적어보았는데, 여전히 해석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니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깊은 공부를 해보길 권한다. 라떼에 대한 이야기는 한글로는 찾기 힘들다.

 

참고하면 좋을 페이지들: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단호박 파이맛까지 갈 필요도 없고 단호박이 들어있지도 않은 단호박 라떼 그 자체로 이미 이론설명이 끝난 것이 아닌가 하는 논의도 있다.

 

    한글로는 단순하게 '단호박 라떼'이지만, 영어로는 'Pumpkin Spice Latte'인데, 이 'Pumpkin Spice'는 단호박만이 아닌 단호박과의 재료도 포함한다고 한다. 그러니 스타벅스 '단호박 라떼'에는 단호박 파이 재료가 들어가는게 맞긴 하다는 것. 결론적으로 스타벅스 단호박 라떼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말도 있다.

 

it is the reflection of a profound reality;
it masks and denatures a profound reality;
it masks the absence of a profound reality;
it has no relation to any reality whatsoever;
it is its own pure simulacrum.

- Jean Baudrillard, Simulacra and Simulation -

 


 

The Frame (2022)

 

    나는 작년에 시뮬라크르 시뮬레이션 이론에 기반해 짧은 콜라주식 애니메이션을 만든 적이 있다. 무한재생이 되게끔 만들었고, 실재의 내가 모조의 나를 만들기 위해 무엇인가 계속 붓고 있는 모습을 만들어봤다. '모조품이 될 나'의 눈을 깜빡이게 함으로써, 어떤것이 '진짜'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끝에는 그 만드는 과정 조차도 액자안에 담겨진 어느 현실의 재현인 허상일 뿐, 실재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컨셉이다. 

 

 

영화 매트릭스 후기

[ Jean Baudrillard 쟝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 & 시뮬라시옹에 관하여 ]

 

 

    개인적으로 영화 매트릭스는 보드리야르의 이론 자체를 재해석했다기 보다는, 영감을 받은건 맞다고 생각한다. 보드리야르는 생전에 매트릭스 영화를 굉장히 싫어했다고 하는데, 현재는 시스터즈가 된 워쇼스키 브라더스 감독이 당시 그에게 다음 영화 구상을 제안 했을때 단칼에 거절했다고 한다. 이유는 매트릭스는 자신의 이론을 올바르게 해석하지 않았기 때문. 그렇다면 조금 재조정하는 개념으로 협력했다면 어땠을까? 싶었다. 나는 학자가 아니라서 그런지 단순하게 아쉽다고 생각했다.

 

 

매트릭스 (1999)

 

 

    매트릭스 첫 개봉때 나는 너무 어렸고, 당시에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고 하는데, 그럴만도 하다. 컴퓨팅하는 개념자체와 가상현실에 대한 설정, 그리고 여러 장면들이 보는 내내 '와 이게 1999년에 만들어졌다니!' 하게 만들었다. 뭔가 신비스런 요소들도 많이 있고, 내가 그리고 우리가 실재하고 있는 현실을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이다.

 

    약간 영화 더 시그널(2014)이 생각났다. (시간상 더 시그널을 보고 매트릭스가 생각나야 맞는 것 같다). 매트릭스에 출현한 배우 로렌스 피시번 Laurence Fishburne은 더 시그널에도 나온다. 갑자기 생각한게, 로렌스 피시번이 이런 류의 공상과학 영화를 좋아하는게 아닐까?

 

    매트릭스를 미루다 좀 늦게 본 것이 아쉽긴 한데, 지금이라도 봤으니 다행이다. 후속작들도 이제 천천히 볼 계획이다.